비참한 자유 속으로
- 2217 정재민
- 2022년 9월 12일
- 2분 분량
‘예술’이라는 단어가 지루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예술을 딱딱한 것이나 다양한 전문용어와 학파가 뒤섞여 형성된 추상적이지만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앞에 말한 설명은 예술이라는 수박의 겉핥기에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이 글을 썼고 여러분들이 그저 이 글을 편하게 받아들여 예술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의 방대한 흐름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는 시대를 대표하는 누구나 알만한 명화로 예술을 설명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칼럼의 첫 시작을 알리는 작품을 정하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 외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소개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과정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고 그러한 점은 평소에 다양한 예술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을 준 ‘예술의 이유’라는 채널의 ‘프랑스의 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속에 숨겨진 비밀’ 영상을 참고하였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1830년 작으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의 우표, 화폐뿐만 아니라 영국의 유명 록밴드 coldplay의 ‘viva la vida’의 배경으로 사용된 이 작품이 1830년 7월, 프랑스 대혁명을 그려낸 다른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른 곳이 아닌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의 중앙을 차지한 자유의 여신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있고 이들은 군대의 시체와 바리케이드의 잔해를 밟으며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시선이 쏠리는 곳은 당연히 삼색기와 장총을 든 채 시민들의 혁명을 끌어내는 자유의 여신이다. 하지만 이 여신은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 접하는 신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지닌다. 전쟁의 상황 속에서도 항상 성스러움을 유지하며 순백의 이미지로 그려졌던 신은 민중의 뒤에서 그들을 응원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외젠 들라크루아는 혁명을 주도하면서 민중과 하나가 되는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절한 전투의 과정에서 여신의 찢겨나간 상의와 겨드랑이의 털은 혁명의 역동성과 인간성을 드러낸다. 이뿐만 아니라 삼색기 옷을 입은 채 여신을 올려다보는 민중, 베레모를 쓴 남성의 눈동자 그리고 권총에 양손에 든 소년은 모두 자유를 열망하는 시민을 상징한다.
프랑스 대혁명을 실제로 관찰한 후 자기 동생에게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내가 조국을 위해 싸우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그릴 수는 있다.’ 이 문장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들라크루아는 시민군의 편이었음을 예측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은 그 누구의 편에도 치우쳐 있지 않다. 들라크루아는 시민군의 승리의 기쁨만을 담아내기보다는 혁명의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기억하기 위해 프랑스 대혁명을 객관적으로 그려내고자 하였다. 덕분에 이 그림은 관람자에게 스스로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당신은 전진하는 자유의 여신이 보이는가? 아니면 국가의 명령 아래 시민군에 맞서 싸우다 처절한 죽음을 맞은 군대가 보이는가?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를 미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중을 이끄는 여신은 자기 가슴이 훤히 드러나고 얼굴 주변이 더러워져도 전혀 개의치 않고 발밑에 무엇이 있든 간에 앞으로 나아간다. 혁명 앞에서는 신조차 자기 모습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은 시민들이 인간으로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겪었을 고통을 부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원래 더럽고 비참한 것이 아닌가. 여신은 이러한 역사를 지켜만 본 것이 아니라 시민의 승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도 바리케이드를 깨부수고 나아갈 수 있었던 1830년 7월 그날의 프랑스가 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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